[Treat Your Poker Like a Business] INTRODUCTION ..#포커라이프 #포커고수 ()
이 책은 이미 출간된 도서에서 다룬 몇몇의 중요한 포커 전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전략을 매우 지겨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겨워할 대상은 섹션 2에서 다룰 15가지 전략이 아니라, 바로 ‘포커를 비즈니스처럼 대하라’라고 이름 붙여진 섹션 1에서 펼쳐지는 41개의 챕터들 입니다. 이 전략들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그레시브한 플레이에 대한 조언이나, 상대를 틸트에 빠지게 하는 법, 혹은 큰 팟에서 좋은 콜을 하는 법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책을 덮으십시오. 그런 쓸모 없는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이 어마어마한 챕터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포커를 한다.' 포커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양심을 한 번 들여다 보십시오.
최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플레이 더 잘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즈니스라는 개념을 장기적인 성공 계획의 부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필수'라고 여깁니다.
포커 세계에는 지식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저는 포커를 비즈니스처럼 이끌어 가는 것과 포커를 성공적으로 플레이 하는 것은 함께 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즈니스보다는 기술적인 측면에만 치중하더군요. 비록 기술적인 능력은 있을지라도, 그 능력을 상품화할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현대의 포커 플레이어들은 과거에 에이전트 없이 활동하던 스포츠선수들과도 같습니다. 경기에서 미친 듯 뛰더라도 한 해에 고작 $10,000을 벌어들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곧 상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많은 선수들은 오늘날 구단 소유주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상품화 하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점에 있어 아직도 초보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포커를 운영함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플레이어들이 진정한 거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승률은 실제로 포커를 할 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비즈니스를 잘 이끌어 나갈 줄 아는 능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저는 웹사이트에서의 포커 훈련을 크게 옹호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저는 Stoxpoker.com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오늘날 그곳에서 전임 강사로 일하는 것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사이트를 비롯하여 다른 웹사이트가 포커 계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웹사이트들이 한계는 바로 회원들이 게임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울지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새로 발견한 능력을 어떻게 상품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도움을 받지도 못합니다.
여러분들 중 몇몇은 저의 커리어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저는 ‘최후의 그라인더(ultimate grinder)’로 불려왔고 그러한 별명 때문에 ‘질긴엉덩이(Leatherass,)’라는 닉네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 닉네임은 포커 영화인 ‘라운더스(Rounders)’에서 나오는 다음의 대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 질긴 엉덩이를 상대하라고요? 됐거든요.”
저는 5년 동안 온라인에서 거의 7백만 핸드를 10,000시간에 걸쳐 플레이 해왔습니다. 그 기간동안 3백만 불을 벌어 들였고, 손실을 낸 달이 없었습니다. 2007년, 하이 스테이크 캐시 게임에 몰두한지 8개월 만에 SuperNova 엘리트 등급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2007년 1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제가 하이 스테이크 캐시 게임에서 벌어들인 돈은 $600,000에 달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 5년 전까지만 해도 포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전혀 몰랐습니다. (집에는 여전히 카드 덱 한 벌조차 없음)
그러나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제가 영화 ‘레인 맨’에 나오는 더스틴 호프만처럼 카드를 엄청 잘 기억하거나, 엄청난 속도로 알고리즘을 돌리는 슈퍼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줄 알 겁니다. 이게 사실일 리가요. 제가 봤을 때 저는 다른 프로들에 비해 수학능력이 훨씬 떨어지고 기술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반에 제가 포커 프로로써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능력은 바로 비즈니스 마인드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대대로 가족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에 이어 부모님께서는 비식품류를 캘리포니아 남부의 마켓이나 주류 판매점에 납품을 하셨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풀 타임으로 부모님과 함께 4년 간 일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수익은 4배나 늘었고, 사업이 부흥하면서 여러 크고 작은 납품업체에 대한 관리를 도왔습니다. 그때 저는 현금 유동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재고와 스마트 성장을 유지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그 일을 매우 싫어했다는 점입니다. 가족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작업 환경은 최악이었으며, 고객의 대부분은 아주 위험한 이웃들이고,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근무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저에겐 하나의 큰 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PGA 투어였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나라에서 최고로 꼽히는 주니어 골퍼였고, 타이거 우즈의 기록을 두 번이나 깬 적이 있습니다. 또 1995년의 1위 freshman 골퍼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 신문 기사에서는 저를 사우스 캘리포니아의 “제 2의 타이거 우즈”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SoCal 고등학교의 골프 챔피언이었지만, 대학 장학금을 타지 못한 것이 가족 사업에 몸을 담게 된 궁극적인 이유였습니다.
2004년에는 다시 골프에 풀 타임으로 매진하기를 결심했습니다. 미니투어에서는 5번을 우승했고 5월 즈음에는 Golden State Tour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PGA 투어를 향한 저의 꿈은 금방 이뤄질 수 있었지만, 운명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마켓에 물품을 조달하던 중 가슴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가해 하게도 23살이란 나이에 심장 마비를 앓게 된 것입니다. 저는 갑자기 병원에 실려갔고, 의사는 최소 1년간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요양하는 동안 돈을 지불해 주지 않아 다시 일을 나가야 했고, 잔고는 부족한데다가 의료 고지서는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다 수중에 단 돈 $1,000만 남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저는 저의 조그만 Newport Beach 아파트에 있었는데, 친한 친구인 Matt Amen이 비싼 골프 셔츠를 들고 문 앞에 나타났더군요. 그는 “$50에 이 셔츠 사라”라고 말했습니다. $50은 그 셔츠의 반값이었습니다. 그는 저의 신용카드를 가져다가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들어가더니 계좌에 $50을 충전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온라인 포커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그 당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게임이 다양한 리밋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이 스테이크 게임들을 골랐고 저는 정말이지 제 눈을 믿을 수 가 없었습니다. 제가 본 처음 팟은 $2,000이 넘는 올인이었습니다. 저는 침실에 앉아 두 플레이어가 저의 한 달 임금에 해당하는 팟을 플레이 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어들 중 한 사람이 리버에서 운이 좋아 플러시 카드로 팟을 이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채팅 창에 “미안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자 상대방은 “괜찮아요. 늘 있는 일인 걸요”라고 답했습니다.
늘 있는 일이라고? 2000불이 저에게는 전재산과도 같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핸드를 충분히 플레이 하면 보너스로 $500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당시 현금이 매우 급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100을 충전하고 데스크 탑으로 플레이를 하면서 노트북으로는 포커 룰을 띄워놨습니다. 저는 보너스를 받기 위해 최대한 오래 버텼습니다. 바로 직업을 떠났고, 전 재산인 $1,000을 온라인에 넣고, 보너스를 따기 위해 한 달 동안 400시간을 플레이 했습니다.
그 때 저의 목표는 삶을 이어가면서 제 때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전 재산이 말 그대로 통째로 온라인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잘나가는 순간에도 남은 한 주간 30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식사를 거르곤 했습니다. 잔돈을 은행에 가져가서 달러로 바꾼 뒤에 맥도날드에서 1달러 버거를 먹곤 했습니다.
첫 번째 기념비적인 순간을 꼽자면 $40,000을 벌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 돈은 가족과 일할 때 벌었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금전적으로 독립하게 되었고,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Matt이 대학을 다니던 오리건 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때 프로 생활을 마무리 하려던 골퍼 Casey Martin에게 연락을 해 방을 구했습니다. 저는 그의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Casey가 오후에 집에 와서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제가 스몰 스테이크에서 그라인딩 하면서 만드는 소리, 툭, 툭, 툭 하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저는 절망적이었지만 그래도 나아지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두둑한 잔고를 유지하면서 토너먼트는 적게 플레이 하고,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추가하며, 미터에 주의를 기울이며, 게임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를 가는지를 밤낮으로 주시했습니다.
포커는 희생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오늘 날 저는 한 핸드에 1 달러를 벌고, 두 모니터로
한번에 12~20 핸드를 플레이 합니다. 하루 시간당 1,200 하이 스테이크 핸드와 추가로 7,000 핸드를
플레이 합니다. 만약 1년에 200일을 플레이 한다면, 14000 핸드를 플레이 하는 것이 됩니다. 이 정도로
플레이 할 수 있는 능력은 포커 기술이 아닌, 포커 비즈니스를 현명하고 생산적으로 해나가는 데에 있습니다.
포커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천부적인 재능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비즈니스로써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포커는 마치 클래식에 대해 쥐뿔도 모르면서 보스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간다고 하는 것처럼 임의적입니다. $2,000 팟을 보면서 결국엔 보너스 $500만 가져갈 수 있다고 하여 포커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필드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포커가 제 삶에 가져다 준 자유로움은 한정 지을 수 없습니다. 포커는 저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고 재택 근무가 가능한데다가 상사도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당신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본적으로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배워야만 합니다. 두 눈은 인터넷 속도가 아닌, 수익성을 항상 주시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느 CEO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다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식에 대해 다루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전략적 조언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그러나 저의 더 큰 소망은 지금으로부터 2~3년이 지났을 때, 여러분이 이 책을 회상하며 여러분의 삶을 향상시켜준 도구였다고 말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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