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 Engel Story ..#포커라이프 #포커고수

프로 포커플레이어

<포커플레이어21> Ari Engel Story ..#포커라이프 #포커고수

15 열무 0 1,946 2021.06.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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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플레이어지 선정 올해의 플레이어 1위를 달리고 있는 Engel 의 이야기 

 

많은 선수들은 포커계의 정상에 서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들의 실력은 기본이고 정말 모든 걸 다 걸어보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줍니다. 최고의 포커프로선수들이 증언해주듯, 이는 스스로를 걸고하는 엄청난 모험이기도 하며, 정말 최고를 꺾고 최고가 싶다면 돈에 대해서는 거의 초연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결국 해내겠지만,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은 그 경지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겠죠.

 

하지만 모두가 타고난 실력, 모든걸 다 걸어버린 모험수, 순수한 운 만으로 정상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Ari Engel처럼 극도의 노력을 통한 그라인딩, 겸손함, 운의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보수적인 계획으로 도달한 사람들도 있죠.

 

토너먼트 포커의 세계에서 Engel은 나름 아웃라이어(독보적 존재)로 통합니다. 실력이 부족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뱅크롤의 반을 한 토너먼트에 서슴없이 집어넣더라도, Engel은 스스로를 뱅크롤빠꼼이로 정의하며, 오랜시간 돌아가더라도 게임에 확실히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Engel은 포커프로가 된지 10년이 넘었으며 많은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오프라인 토너먼트 누적수익 $3.2M 이외에도 그는 온라인에서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어느순간 그는 세계온라인 포커에서 탑랭크에 들게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WSOP 서킷리더보드에서 팔찌 8개로 역대 2위를 공동으로 달리고 있으며, 1월에 열렸던 Aussie Millions에서 1등을 하면서 카드플레이어지의 올해의 선수 1순위에 올라있습니다.

 

그 Alan ‘Ari’ Enge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

 

Engel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을 시작하시면서 반년만에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정말 세계 곳곳에서 살아봤네요.” Engel이 말하길, “저는 남아프리카에서 3년, 호주에서 8년, 이스라엘에서 1년, 메릴랜드에서 2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스라엘에서 다시 1년, 뉴욕에서 대학을 나오고, 베가스에서 6년을 살았죠. 블랙프라이데이사건 이후로 저는 온라인포커를 치러 토론토로 돌아왔습니다. 요즘은, 딱히 제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는데 왜냐하면 너무 여행을 많이 다니기 때문이죠.”

 

Engel과 그의 남동생,여동생은 세계문화에 대해선 일등급교육을 받은 셈인데요. 그는 부모님이 일부러 그런 다방면의 교육을 시키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아버지는 랍비시고 제 어머니는 유태인 학교 교사세요. 그래서 그 직업 때문에 여행을 다닐 일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런 식으로 풀렸네요.” “부모님께서 저와 제 동생에게 일부러 세상을 보고 더 잘 배울 기회를 주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너무 오래 돌아다니다보니 분명 그 경험에서 얻은 점이 많은건 사실이죠. 다른 아이들처럼 저도 한곳에 정이들면 떠나는게 매우 힘들었는데, 그렇게 여러군데를 돌아다닌 경험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립해야할 시기가 왔을 때 Engel은 더 교육받기 위해 뉴욕을 택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도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이 없었어요. 다만 저는 능력있고 성적이 괜찮은 학생이었다보니 일단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괜찮은 곳을 가보자고 생각했죠.” “고등학교때 용돈을 모아 데이트레이딩을 시작했는데, 그당시 장이 매우 좋았거든요. 그래서 NYU 경영대가 월스트리트에도 가까우니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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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로의 입문]

 

금융관련 학문을 배우고는 있었지만 그는 곧 포커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그의 룸메이트가 Andrew Brown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Andrew Brown은 2008년에 WSOP 팔찌를 딴 적이 있으며 2012년에도 거의 팔찌를 한 개 더 딸뻔한 미래의 포커선수였습니다.

 

“Andrew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고 결국 포커를 치기위해 학교를 그만뒀어요. 하지만 그는 뛰어난 포커선수였고 저는 그가 온라인포커를 치는걸 보며 감탄했죠.” “그가 자신의 사고과정을 설명해주면 저는 알아들을 수 있는만큼 배우곤 했어요. 그 당시에 낮은 방을 잠깐 쳤었는데,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건 졸업을 하고나서부터였죠.”

 

일단 대학학위를 하나 따놓은 뒤부터 Engel은 포커를 더 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을 치기 시작한 이래로 그의 실력은 정말 상승했습니다.

 

“$40달러 바이인 홈게임도 매주 학교에서 열리곤 했는데 제가 거기가서 Bodog이라는 사이트를 알게되었죠. 가입해서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순식간에 제가 $2/$4 노리밋판떼기를 찢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일을 그만뒀죠. 어차피 제가 좋아했던 직업도 아니었고 저는 포커를 전업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랍비셔서 혹시 포커를 직업으로 삼겠다하면 반발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신 분이 계셨겠지만, Engel이 말하길 그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5년전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아들의 직업이 뭐가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으신다면 프로포커선수는 1000등에도 못들 정도였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매우 극도로 보수적인 배경을 갖고 계신 분들이셨거든요. 저를 서포트하지 않을 이유를 너무도 많이 갖고 계셨고, 저를 포커치지 못하게 만들려고 대는 이유들도 그분들 입장에선 매우 논리적이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부모님께선 정말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셨죠.”




[최고가 되기 위한 희생]

 

Engel이 전업을 시작했다는건, 말그대로 풀타임 포커였습니다. 그는 온라인포커에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2006년에 그는 트리플크라운 어워드(일주일안에 각기 다른 사이트에서 각 메이저토너먼트를 우승하면 주는 상)를 2번이나 탔을 뿐 아니라,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습니다.

 

“2005년에 저는 집주인(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에게 세를 내고 지하방에서 사는 생활을 끝낼 수 있었어요.” “제가 처음 WSOP 서킷 팔찌를 따고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농담삼아 햇빛을 본지가 3년만이라고 말을 했었거든요. 근데 사실 이 말이 반은 맞는 말이었던게, 제가 그 3년을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온라인 포커만 쳤기 때문이죠. 절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은 아니었던거 같아요. 저는 음식도 대충 때우고 하루에 담배를 2갑 반을 피면서 탄산음료를 마시면서 운동도 안했죠. 오직 포커만 쳤고, 저는 워커홀릭이었죠.”

 

왜 그렇게 포커에 쏟아붓기로 했는지에 대해서 묻자 Engel은 희생을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요. 왜냐하면 그당시에 그에겐 게임방수가 너무 좋았고 그도 얼마나 이런 방수가 오래 지속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포커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했는데요. 저한테는 일종의 프로운동스포츠 선수처럼 보이더라고요.” “운동선수들은 매우 제한된 시간 안에, 즉 그들의 몸이 더 이상 경쟁에서 이길 수 없게 되기 전에 남은 인생에서 평생 써야할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저는 제가 포커를 평생 칠 수는 없을거라고 봤고, 그러니 제 생각에, 제가 한창 잘 나갈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따두려 했던거 같아요.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보니 제가 포커에 잠깐 몸을 담은 정도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고 좀더 팟커밋되다보니 조금 더 쳐볼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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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포커로의 전향]

 

Engel은 라스베가스로 넘어왔는데, 오프라인 포커를 더 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David Chicotsky와 함께 그는 집을 포커교육시설로 활용했습니다. 오프라인 포커를 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지만 Engel의 신념은 큰 바이인의 토너먼트를 참가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편하게 느끼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가 인정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분명 온라인에서 더욱 편했고, 여름에 겨우 5,6개 정도 토너먼트에만 참가했거든요. 또 한 가지는 제가 Shabbat 이라는 시기에는 게임을 안했는데, 그게 유태인식 주말이라 토요일이었거든요. 토너먼트가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분명 제가 참가할 수 있는 토너먼트에 큰 제약이 있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저는 덜 종교적인 삶을 살게 되었죠. 바꾸는데 시간이 오래걸린 편이지만 저는 몇몇 예외를 두어 특정 대회를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매우 규율을 잘 지키는 정통유대교식 유대인으로 길러졌지만 결국 제가 더 이상 그런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아니란걸 깨달았죠.

 

Engel은 속도를 내어 블랙프라이이전에 두어개의 WSOP 서킷 팔찌를 따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WSOP 내셔널 챔피언쉽이라는 대회가 생겨서 Engel이 그 대회에 참가하고자 더 동기부여를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8개의 팔찌를 획득했으며, Alex Masek에게 간신히 뒤진채 Chris Reslock 과 함께 역대 2위의 성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수적인 접근법]

 

과거 몇몇 선수들은 WSOP 서킷에서 우승하는 것을 더 큰 토너먼트로 넘어가는 기회로 삼았지만 Engel은 그렇게까지 멀리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뱅크롤빠꼼이로서 항상 바이인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결정요소가 되더라고요. 이런 점이 결코 자랑스럽지는 않아요. 이로인해서 손해도 좀 본편인데, 그래도 제 보수적인 접근덕분에 저는 항상 제 주변사람들이 제 뱅크롤과 제 성취수준에서 플레이했을법한 것보다 작은 사이즈에서 플레이를 했어요. 어찌보면 자신감과 관련된 부분도 있고요. 제가 크게 한번 먹고 몇 개에서 탈락하고나면 저는 매우 빠르게 제가 편한수준까지 사이즈를 낮춰왔거든요. €5,000 EPT 토너먼트냐 아니면 $1,500 WSOP 아이오와 서킷이벤트냐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대개 덜 빡세고 ROI가 높은 작은 토너먼트를 택했던 것 같네요.”

 

물론 조심스런 뱅크롤운영이 Engel을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는 몇 년간 이로 인해 손해도 보았을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 보수적인 성격이 포커선수로서 성장하는걸 막는 부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포커선수 중에는 저보다 더 쉽게 성공한 선수도 많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돈을 집어넣는 것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편한 물에서 노는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다 잃고도 돈대줄 사람을 찾아 다시 도전하지만 저는 그렇진 않거든요. 제가 그렇게 됐더라면 저는 망가질거 같고 그걸 견딜수 없을거 같아요. 제가 처음 시작할 당시에 포커를 직업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이기는건 정말 엄청난 운을 필요로 했거든요. 제 포커경력이 만약 $10,000를 따고 그걸 다 잃는 식으로 시작했더라면 저는 절대 지금까지 포커를 치고 있지 않았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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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에 대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수백만달러를 벌었다는 얘기는 분명 누군가는 믿기 힘든 얘기일 수 있습니다. 다만 Engel은 그동안 한번도 대박에 가까운, 인생을 바꿀정도의 돈을 만진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그는 그라인딩을 통해 4자리, 5자리 정도의 상금씩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입니다.

 

서킷 우승경력뿐 아니라 Engel은 Heartland Poker Tour 메인이벤트, Punta Cana Poker Classic Empire State Holdem Championship, APT Philippines 하이롤러도 우승을 했었는데요. 결코 $180,000를 넘는 상금을 탄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2016년 1월에 맬버른에 Aussie Millions를 참가하게 되었죠. 메인이번트 전에 두 번정도 파이널에 간다음에 그는 AUD$10,000(약 한화850만원*)바이인, 732명의 필드였던 메인이벤트에서 우승하며 $1,120,000을 차지했습니다.

 

더욱 더 뱅크롤이 빵빵해진 이제 Engel은 샤크들이 가득한 하이롤러서킷으로 갈법도 하지만 그는 그게 자신이 하고싶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직도 그런 도전이 저와 제 계획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고 있어요. 분명 제약들이 있을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올해초부터 한방 크게 찍으며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해보다는 올해 큰 샷을 날려보는게 유리하긴 하겠죠. 저는 이기기전에도 매우 편안한 상태였고 물질적인 풍요라는 측면에서 제가 더 원하는 것은 없는 상태에요. 저는 옷가방 두 개만 들고도 세계어디든 돌아다닐수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쌓아두는 것은 제게 큰 어필이 되지 못하고 제 삶의 방식과도 맞지 않아요. 저는 그냥 게임에 좀 더 집중하고 싶고 릭(단점)을 줄일뿐인데 그러다보면 제가 어떻게 되는지 여러분도 보실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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