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n Silverman Story..#포커라이프 #포커고수

프로 포커플레이어

<포커플레이어19>Steven Silverman Story..#포커라이프 #포커고수

열무 0 2,469 2021.06.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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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위해서 잠시 포커를 쉬다


대학교를 그만두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온라인 포커 뱅크롤을 수백만불로 만든 신데렐라와도 같은 스토리를 들어보셨겠지만, 실제로 수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프로로 전향을 했지만, 이러한 결정에 후회를 많이들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학교를 잠시 그만두고, 수백만불을 포커로 통해서 벌은 뒤, 다시금 포커를 그만두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간 사람의 스토리는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Steven Silverman이며, 과거 “zugwat”이라는 아이디로 온라인 하이스테이크 캐쉬게임을 주름잡았던 플레이어 였지만, 충분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 그는 이제 삶의 큰 변화를 위해서 잠시 포커를 내려 놓았습니다.


25살의 Maryland 토박이인 그는 토너먼트 서킷으로 돌아왔으며, 상대들에게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포커를 시작한 계기


Steven Silverman은 Washington D.C에서 40분 거리인 Maryland주 Derwood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두형제 중 막내였던 그는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기관에서 computer security로 일하는 아버지 Mark Silverman과 식품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승인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어머니 Phyllis 사이에서 그들의 근면성실한 부분에 굉장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학업에 이러한 영향을 적용하지는 않았으며, 대신 14살에 발견한 포커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10학년이 되기 전 여름 캠프에서, 저는 포커를 알았어요.”라고 Silverman이 회상하며, “저의 그룹 중 한 명의 친구가 게임을 소개해줬지만, 룰을 이해하지는 못했죠. 프리플랍이나 플랍 액션이 없었고, 첵-레이즈도 없었으며, 그저 2번의 베팅 라운드가 있었을 뿐이였어요. 제 형이였던 Aaron은 온라인 계좌를 만들어주었고, 저는 프리롤과 디파짓 보너스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플레이하기 시작했어요.”


Silverman은 그가 처음으로 만들었던 뱅크롤을 계속해서 불려나갔으며, University of Maryland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많은 경험과 그의 이름아래 수 많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와중 그는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저는 포커 외의 다른 곳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고, 수업은 매번 뒷전이였죠.”라고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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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부모님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프로 포커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College Park에 살고 있던 Greg Merson과 친구가 되었으며, 그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으며, 로컬 언더그라운드에서 $1-$2 캐쉬게임 그라인딩을 하기 시작 합니다. 그는 수 많은 게임을 가졌지만, 동시에 2번의 강도를 당했으며, 카드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로 하여금 좀 더 엄격한 게임을 가져가게끔 하였습니다.


Silverman은 가끔 뉴욕에 위치한 Turning Stone 카지노에서 플레이를 하기도 했는데, 그 곳에서 그는 Christian Harder 와 Randal Flowers와 같은 젊은 프로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완전히 저와 다른 레벨에 위치해 있었으며, 저로 하여금 그 당시 저는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걸 인지하게끔 해주었어요. 특히나 온라인 포커로 따지자면 말이죠.”라고 그가 말했으며, “저는 제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배웠어요. 그들은 저로 하여금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할 정도의 무서움을 선사해 줬어요.”


그가 학교를 벗어난 첫 번째 경험은 엄청난 실패의 연속 이였지만, 두번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학교로 다시금 돌아온 그는, 온라인에서 빅 스코어들을 줄줄이 내면서 다시금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런


당시 21살이 아직 되지 않았던 그는, 온라인 플레이에 집중을 했으며, 아주 가끔 해외로 포커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플레이 했었던 첫번째 라이브 토너먼트 WPT North American Poker Championship in Niagara Falls에서 그는 10위로 대회를 마감하며 $66,395의 수익을 거머쥐었습니다. 그 뒤 그는 Costa Rica에서 열린 Latin American Poker Tour에서 메인 이벤트 3위의 성적을 거두며 $106,167의 상금을 획득 했습니다.


또한 그는 FTOPS에서 $1,000 이벤트 우승을 차지하며 $350,450의 상금을 거두었으며, EPT Grand final 메인 이벤트 in Monte Carlo에서도 $126,100의 수익을 거둡니다.


이렇게 토너먼트 플레이가 급속도로 발전한 그였지만, Silverman은 총체적인 그의 게임을 발전시키려 노력했으며, 그러한 노력은 캐쉬게임의 발전으로 연결되어 집니다.


“언젠가 한 번은 헤즈업 싯앤고에 집중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꽤나 잘 되고 있었지만, 그해 여름 저는 뉴저지에 있는 beach house에서 Dan Smith, Andrew Lichtenberger와 같이 살게 되었었어요. 그 때부터 저는 케쉬게임을 좀 더 많이 하기 시작했고, 많은 것을 배웠죠.”


“많은 것”이라는 단어가 충분치 않을 만큼, Silverman은 온라인 캐쉬게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게임들을 하기 시작했으며, $50-$100 그리고 $100-$200 노리밋 게임들을 계속 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과 수익을 거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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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가다


2009년 중반, Silverman은 가장 무서운 온라인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그의 커리어에서 최정점을 찍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포커에 밀어부치는 것보다, 다시금 학교로 돌아가서 학위를 마치기로 결정했습니다.


“포커를 하면서, 학교를 마쳐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라고 말했으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 완전히 포커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였고, 제 부모님을 위해서 다시 학교에 간 것도 아니 였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젊을 때 학위를 마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런을 보여주는데 왜 포커를 그만두는 거지? 진실은 바로 Silverman은 완전히 포커를 그만둘 생각은 아니였던 것 이였습니다. 그는 둘 다 동시에 잘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듣는 과목들은 완전한 집중을 요구로 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언제나 한 개를 파고드는 성격을 가졌기에, 제가 다시금 학교로 돌아갔을 때 가장 머릿속을 메꾼 건 수업 이였습니다. 저는 제 학위를 따기 위해서 완전히 집중했고, 여름때는 수업 때문에 WSOP 메인 이벤트까지 포기했으니까요.”


Silverman은 Biochemistry와 Nutritional science를 복수전공 했습니다. 첫 해 그의 잠자는 시간은 일반적 이였으며, 여가시간이 생길 때면 몸을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카드를 잡고 플레이 할 때면 여전히 그의 스킬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히터가 되다


2012년 여름, 그의 4학년 여름방학 이였을 때, 4개의 파이널 테이블에 오르면서 $425,000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Five Star World Poker Classic, EPT Barcelona, Bellagio Cup VIII, 그리고 가장 눈에 띄었던 파이널 테이블은 아무래도 $10,000 buy-in WSOP Pot-Limit Omaha Championship에서 3위에 입상한 것 이였습니다.


이러한 런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빠르게 학교로 돌아가, 마지막 학기를 마쳤습니다. 그 해 12월에 졸업한 그는 $5,000 바이인 PokerStars Caribbean Adventure에서 4위로 대회를 마감하며 $69,040의 상금을 획득 하였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그는 EPT Deauville High Roller 이벤트에서 6위로 마감을 하며 $64,786의 수익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올해 5월, 그는 모나코에서 열린 EPT Grand Final High Roller 이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커리어 역사상 가장 큰 스코어인 $1,016,745의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돈이 그에게 어떠한 의미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일반적인 하이-롤러 패션의 답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미 말도 안되는 스윙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러한 우승은 뱅크롤을 불리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인정하며, “이러한 수익은 저로 하여금 큰 토너먼트들을 스케쥴링 할 때 좀 더 안전하고 정신적으로 편안한 기분을 들게끔 해줍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백만불이 진짜 백만불처럼 보이는 것 보다는, 더 많은 돈을 따기 위해서 사용해야 될 일종의 ‘돈’처럼 느껴집니다.”


Silverman은 돈에 대해서 무감각 해지는 것이 성공적인 하이스테이크 플레이어가 되는 기본적인 자격이라고 설명 했습니다.


“종종 큰 손실을 내고 나서, 그러한 손실이 실제로 어떠한 돈이며,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러한 생각은 그다지 건강하고 좋은 생각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도박에 내던지는 돈이 얼마나 갚어치를 하는지 생각을 하시면 안됩니다. 이 것은 게임이며, 돈은 스코어를 유지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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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2013 WSOP에서 그는 $3,000 바이인 이벤트에서 3위로 마감을 하며 $123,202의 상금을 획득함으로써 계속된 입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8월 그는 Seminole Hard Rock Poker Open High Roller $100,000 바이인 이벤트에서 올 해 2번째 타이틀을 거머쥐며 $891,660의 상금을 획득 했습니다.


25살 밖에 되지 않은 그는 이미 $3m 이상의 토너먼트 상금과 더불어 온라인 케쉬게임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토너먼트 서킷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않을 때면, 온라인 포커를 위해서 토론토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여자친구 집이 있는 미시간 Ann Arbor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그의 가족은 이제 완전히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하이스테이크 캐쉬게임에 관심을 많이 주시지는 않으시지만, 흥분과 압박이 충만한 토너먼트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처음에는 엄청난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저는 이러한 걱정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을 잘 하고 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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