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플레이어22> Cate Hall Story ..#포커라이프 #포커고수 ()
포커 루키인 그녀, 첫 해 투어에서 3번의 WPT 파이널 테이블을 만들다
포커 붐이 끝날 무렵에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일이 줄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파이널 테이블은 익숙한 이름으로 채워지곤 하죠 : 하이스테이크 슈퍼스타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우위를 점하고 있고 중간 레벨의 프로들은 자신의 로컬에서 열심히 그라인딩을 해서 마침내 위로 올라가곤 합니다.
Cate Hall은 최근 몇 년 간 포커에 전혀 연관이 없다가 가장 높은 레벨의 게임을 한순간에 플레이 하는 몇 안 되는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첫번째 라이브 토너먼트 입상은 2015년 7월 이였습니다. 그 후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그녀는 12개의 이벤트에서 입상을 했으며 WPT 메인 이벤트 파이널 테이블을 3번이나 만들었습니다. 또한 POY 의 영예를 거의 안을뻔 했죠.
또한 그녀는 이러한 입상을 보여줌으로써 아직까지 여성 플레이어가 포커계에서 성공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게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성별의 이슈에 대한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32년간의 인생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그녀가 포커계의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가 되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흥미도의 변화
Hall은 Arizona 주 Tucson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곳에 머물렀습니다. 여타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게임이 가지는 전략적 컨셉이 흥미로워서 게임을 접했다고 합니다.
“저는 항상 경쟁요소를 갖춘 게임에 흥미가 있었어요.”라고 Hall이 말하며, “어릴 때는 카드게임을 많이 할 기회가 없었지만 7살 때 할머니로부터 카드게임에 대해서 조금 배웠죠. 이러한 게임들은 항상 저의 흥미를 가져갔는데 왜냐하면 저는 머리싸움을 좋아했거든요.”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체스에 빠졌으며 대학교 때는 철학과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World of Wacraft에 1년간 빠졌었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해마다 어떠한 것의 흥미도가 바뀌는 것 같아요. 대학교 초때는 러서치에 관한 과학자가 되서 관련 직장을 얻고 분자화학 & 생물학에 대한 리서치 조수로써 일할 생각이였죠. 4학년이 되고 나서 저는 사실 지루함을 느꼈고 뭐 이것저것 하는 저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웃음) 어찌되었건 간에 평생을 실험실에서 보내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란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서 복수전공 프로그램을 선택했고 철학 학위를 얻었어요. 그 뒤 로스쿨을 가려고 했죠.”
졸업 후 그녀는 뉴욕에 위치한 한 회사에서 사원으로 일년간을 보냈으며 그 후 Washington D.C로 옮겨 4년 간을 고가 제품에 대한 항소를 처리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러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은 그녀를 힘들게 했으며 그녀로 하여금 다음 단계의 흥미가 있는 곳으로 빠트리게 했습니다 : 포커 프로가 되는 것.
포커 = 자유
“저는 대학교 때 홈게임을 하면서 포커를 접했고 그 때가 아마 포커 붐이 일어 났을 때 였을꺼에요. 모두가 이 게임을 했고 정말 재밌었죠.”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Foxwoods Resort Casino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았었지만 로스쿨에 있을 때는 게임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2년 반 전, 그녀는 West Virgini, Charles Town 에 위치한 카지노에 주말마다 취미로 플레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Hall은 계속 해서 플레이 시간을 늘렸고 대부분의 경우 로우 스테이크의 노리밋 캐쉬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포커를 하게 된 동기는 사실 게임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사실 법조인이 된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았고 그 외의 할 일을 찾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Hall은 포커를 플레이 함으로써2년 간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는 데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잠재적으로 벌어들일 돈의 기대치 때문에 포커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퇴사를 함으로써 심지어 메인 이벤트를 우승해도 벌어들이지 못할 돈을 포기했다라는 걸 알았죠. 제 삶을 따져봤을 때 법조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돈을 희생했다고 명백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사실 포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봐야겠죠. 그저 플레이를 즐겼고 2년 동안 꽤나 게임을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포커 프로가 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는 정말이지 놀라웠고 저의 인생은 대학때부터 포커 프로가 되기 전까지 빡빡한 일과에 책임감에 짓눌린 삶을 살았었죠.”
포커 프로가 됨으로써 가지는 자율성이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게임 차체로도 큰 흥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저에게 끊임 없는 흥미를 주는 데 왜냐하면 이 게임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죠.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얼마나 많이 배워야 되는지를 깨닫게 되고 자신보다 더 높은 레벨의 위치를 인지하게 되면 자신의 현재 스킬 레벨을 인지하지 못하게 될때가 있어요. 저는 이러한 도전을 정말로 즐겨요.”
WPT 에 불어닥친 폭풍
2015년 회사를 떠난 뒤, 그녀는 첫WSOP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녀에게는 일종의 “성지순례”라고도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계획은 시리즈 기간동안 베가스에서 캐쉬게임 그라인딩을 하는 것이였지만 결국 토너먼트를 플레이 하게 됩니다. 그 때의 가장 큰 입상은 $777 바이인 이벤트에서 4,422명 중 33위로 대회를 마감한 것이였습니다.
“이러한 빅 이벤트의 Day 3 진출 경험은 저로 하여금 왜 사람들이 토너먼트를 플레이 하는지, 그리고 기쁨을 주는 지 알 수 있었어요.”라고 회상하며, “그 뒤 토너먼트에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저는 캐쉬게임이 토너먼트보다 좀 더 많은 것을 포함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숏스택 플레이가 토너먼트에서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딥 스택 플레이가 좀 더 흥미로웠거든요 전략적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토너먼트를 좀 더 경험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흥분됬었어요. 경험에 압도되었다고나 할까요,” 메이져 토너먼트 파이널 테이블($3,500 WPT Maryland Live!) 에 처음 올랐을 때를 기억하면서 이야기 했으며, 5위로 대회를 마감하게 됩니다. 몇 주 뒤 그녀는 WPT event Montreal를 플레이 했고 입상을 하게 됩니다. 그 뒤, Bellagio에서 열린 WPT Five Diamond World Poker에 참가하게 됩니다. 2015 WSOP 메인 이벤트 이후로 그녀의 사상 2번째 10K 바이인 이벤트였는데요. 캐쉬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서 베가스로 향했지만 도전을 하게 되었고 세틀을 땀으로써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커 커뮤니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신세를 많이 졌어요. 매일 훌륭한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했죠. 토너먼트를 플레이 하고 파이널 테이블에 오른 건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였어요.”
WPT Borgata Winter Poker Open에서도 입상을 하며 그녀는 5번의 대회에서 5번의 입상으로 그 대회 기간까지WPT POY 1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 L.A. Poker Classic과 Fallsview Poker Classic festival을 플레이 했지만 입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Hall은 큰 돈을 바이인으로 쓰고 리턴이 없는 결과에 의기소침 했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깊은 생각을 한 뒤, 그녀는 좌절감도 느꼈지만 마음을 다잡고 WPT 의 종착역인 Florida로 향하게 됬습니다.
“저는 그때만큼 WPT POY 에 오를 수 있는 전호의 기회가 다시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Florida로 향해서 Seminole Hard Rock Poker Showdown에 참가했죠.”
Hall은 $3,500 메인이벤트와 $10,000 Seminole Hard Rock Poker Finale event 모두 입상을 했습니다. $10,000 Seminole Hard Rock Poker Finale event는 탈락을 했지만 $3,500 메인이벤트에서는 파이널 테이블에 오르게 됬는데 이 일이 불과 하루간격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10명의 플레이어가 남은 상황에서 숏스택들이 많았지만 한 번의 더블업은 탑 3 스택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POY 레이스에서 우승할 수 있는 전호의 기회라고 봤어요. 물론 아주 근소하게 부족했지만 말이에요. 파이널 데이에 플레이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은…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았고 형용할 수 없는 경험 이였어요.”
포커의 성별 논란 재점화
그녀의 플레이는 작년 한해 조명을 받았지만 또한 그녀의 행동은 포커계에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년 가을 WPT 파이널 테이블에 올랐을 때, Royal Flush Girls, 투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녀들과 전통적인 사진 촬영을 거부 한 것 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을 그녀는 트위터에 올리게 되는 데 “Royal Flush Girls 처럼 몇몇이 포커가 남자의 게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포커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별에 대한 이슈에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었습니다.
“제 생각엔 성별에 대한 이슈 측면으로 봤을 때 포커계는 퇴보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다들 알고 있는 것 마냥 행동해서 이러한 부분을 깨닫기가 어렵죠. 테이블에서 제가 어떠한 문제점을 말하면 종종, ‘다 관례가 그러하니 이렇게 진행합시다.’라고만 설명을 해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Hall은 그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과 의견을 냈지만, 논란의 초점이 흐지부지 되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상한 점이, 사실 제가 포커를 하기 전에는 성이 문제가 될거라고는 생각치 못했어요. 전까지는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의 성차별을 겪어보지 못했어요.”라고 조금은 놀라운 어조로 말했는데 그러한 이유는 포커를 하기 전 종사한 직군이 남자가 대다수인 직군이였기 때문입니다 : 과학과 수학 계통의 리서치 직군은 95%가 남자였고 심지어 WOW를 플레이 할 때에도 남자가 쓴 사설을 읽곤 했었습니다.
“저는 남성이 우세한 커뮤니티에 제 모든 인생을 종사, 지내왔었지만 단언할 수 있는 점은 그 어떤 커뮤니티보다 포커 커뮤니티가 여성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포커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처음 커뮤니티를 접했을 때 포커가 어떤 점에서 뒤떨어져 있는지 알려 줄 수 있는 건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 저는 포커계에서 성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 한 사람’으로 되어졌는데 사실 지금의 위치에 있는 제가 조금 이상하게도 느껴져요.”라고 말하며, “이러한 성 이슈는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트위터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을 물어보곤 해요.”
여성에게 좀 더 친숙한 포커계를 만드는 것은 한가지 해결방안으로 될 게 아니지만 Hall은 게임을 광고할 때 좀 더 다른 방식을 가짐으로써 그 첫번째 발을 디딜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쪽 성에만 치우친 전략적 광고만을 하지 않아도 여성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 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진전
여러 포커 프로는 평생을 포커로만 먹고 살 수는 없다고 깨닫습니다.
Hall은 명쾌하게 그녀가 짧은 시간 동안만 포커를 플레이 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포커를 오랫동안 할 계획은 없어요. 아마도 1년이나 2년 정도 더 플레이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내년에 저는 비영리 단체에 일을 해서 합리성에 대해 집중하거나 혹은 학교에 다시 입학해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녀의 머릿속엔 포커가 있습니다. 1년 전 그녀의 데뷔처럼, 다음 일을 하기 전 어떠한 일을 벌일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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