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또 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Victoria Livschitz

프로 포커플레이어

<포커플레이어34>자신의 또 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Victoria Livschitz

포커라이프 0 254 10.15 17:34

사업가이자 테크에 능한 그녀가 이제는 하이롤러 포커 토너먼트 이벤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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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리브쉬츠는 2021년 말 팬데믹 기간 동안 포커 게임에 대해 철저히 스터디한 후 하이 롤러 씬에 뛰어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높은 레벨의 포커 재능에 위축될 수 있었지만 이러한 남성 중심의 산업에서 여러 비즈니스 벤처기업으로 성공을 거둔 그녀에게는 사실 이미 익숙한 환경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리투아니아에서 성장한 그녀는 철의 장막 붕괴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클리블랜드에 정착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던 중 체스 아카데미를 열었고 이후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에서 연구직으로 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선그리드의 수석 설계자로 일하며 세계 최초의 공공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리드 다이나믹스를 창립하여 포춘 500에 속한 대다수의 기업을 위한 기술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회사가 상장된 후 “은퇴”를 선언하고 세계적으로 하이킹에 대한 열정을 살리기 위해 식품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커 하이 롤러 세계에서 빠른 성공을 거둔 그녀는 여성 올-타임 상금 리스트에서도 순위가 급속도로 상승하며 이미 $1.8M이 넘는 커리어 누적 상금 기록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리브쉬츠는 2023 EPT 파리 페스티벌에서 열린 이벤트 및 올해 텍사스 포커 오픈을 포함, 네 번의 우승을 거두었으며 올해 초 포커GO 투어 U.S. 포커 오픈에서는 네 개의 이벤트에서 연속으로 입상을 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게임을 최고 레벨에서 플레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앤드류 ‘럭키추이’ 리흐텐버그와 닉 슐먼 등과 함께 트레이닝 툴인 옥토피포커를 개발 했으며 포커에서 여성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포켓 퀸즈에 자원봉사하고 있습니다.

 


리브쉬츠는 최근 포커 스토리 팟캐스트에 출연하여 자신의 포커 이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이 같은 랭킹 상승을 이뤘는지도 설명했습니다. 전체 에피소드는 CardPlayer.com, YouTube, Spotify 또는 모든 팟캐스트 앱에서 청취할 수 있습니다.


JR: 포커GO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U.S. 포커 오픈 시리즈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셨어요.



VL: 네, 4개의 이벤트에서 연속으로 입상한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러한 결과를 얻게 된 것에 정말 기쁘고 한 편으로는 약간 놀랐어요. 아시다시피 베리언스는 양 쪽 방향 모두에 적용되니까요. 가끔은 좋은 쪽에 있고 가끔은 나쁜 쪽에 있겠죠.



JR: 수학적 사고를 주로 하시는 만큼 이번 성과를 겸손하게 여기시는 것 같은데 이 같은 연속적인 입상은 당신의 인내력이나 체력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VL: 맞아요. 이벤트는 정오에 시작하고 버블의 경우 자정이 되서야 끝나며 새벽 2시까지 포커를 플레이 하고 나서야 끝나게되죠. 3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서도 너무 긴장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리고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즈니스 미팅도 해야 하니 정말 토너먼트 일정 속에서 이 말도 안되는 스케쥴을 다 소화해야 해요. 양쪽에서 정말이지 불을 태우다 보니 다섯 시간을 자는 것 조차 사치가 되죠. 이렇게 일주일 내내 생활하니까 확실히 피로가 누적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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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하이 롤러 이벤트에서 탈락한 후 바로 다음 이벤트에 참가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VL: 요상하긴 해요. 하이 롤러 이벤트에서 발생하는 여러 초현실적인 일 중 하나가 바로 매일이 본질적으로 하이 롤러 터보라는 점이에요. 플레이하다가 파이널 테이블에 진출하면 또 서로 싸움을 벌이고 파이널 테이블에서 탈락하게 되면 곧바로 다음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죠. 잠깐 브레이크 타임을 통해 산책도 하지만 쇼는 계속 진행되어야 하니까요.

 


JR: 포커 이전에는 체스가 있었죠.



VL: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체스를 두었고 리투아니아 주니어 챔피언과 여성 챔피언였어요. 아버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으로 진정으로 르네상스적인 사람이셨어요. 유명한 수학자이자 시인, 음악가였고 심지어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셨죠. 아버지는 체스를 매우 사랑하셨고 제가 아마 세 살 때쯤 체스를 배웠을거에요. 아버지가 저를 체스 학원에 데려가면서 그렇게 시작되었죠.


 

대학 시절 소련이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철의 장막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요. 저희는 동유럽에서 열리는 해외 체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고 불가리아에서는 많은 큰 체스 대회가 열렸어요. 대학 1학년 때 저는 대회를 위한 여행을 다녔어요.


 

대회 첫날, 우크라이나에서 온 귀여운 남자 아이를 만났어요. 그는 국제 마스터로,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길에 있었죠. 그리고 대회 마지막 날, 그가 저에게 청혼했어요. 그래서 저는 약혼한 채로 돌아왔어요.



우리는 결혼을 했는 데 그 때 당시 소련이 정말 급격히 붕괴되었죠. 저희는 정치적 난민으로 떠날 기회를 가졌고 그래서 1991년, 미국으로 이주했어요.



JR: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생활은 어땠나요?


 

VL: 저는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미국 사람들은 모두가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였죠.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 충격을 받았어요. 길을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 크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봤구요. 러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 없거든요. 사람들은 그냥 자기 일에만 신경 쓰고 대화도 하지 않죠. 문화가 정말 달랐어요.


 

저희는 당시 $500만을 가지고 있었는 데 당시 갓 태어난 딸이 있었어요. 그 당시 미국 전역에 경제적 불황이 돌았기에 저는 네 개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어요. 돈을 벌기 위해 수학 전공에서 컴퓨터 과학으로 전공을 변경했구요.


JR: 체스 학교도 시작하셨나요?



VL: 맞아요, 저의 첫 번째 비즈니스였어요! 저희는 클리블랜드에 살고 있었는 데 신문사에서 두 명의 우크라이나 이민자 체스 플레이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어요. 그들은 제가 27명과 동시에 대결하는 전시 경기를 개최해줬는 데 저는 그런 매치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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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모두 줄을 서 있었고 저는 6시간 동안 체스를 두었어요. 두 번의 휴식을 가지며 아기를 수유해야 했지만 결국 21경기를 이기고 3경기를 무승부로 마쳤어요. 제가 게임을 하는 동안 당시 남편인 레너드는 관전하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아 적고 있었어요. 하루가 끝날 무렵, 리브쉬츠 체스 아카데미가 탄생한거죠.



JR: 항상 기술 쪽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나중에 생긴 건가요?



VL: 저는 생존 본능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웃음)



JR: 포드 자동차에서 연구를 하고 잠깐이나마 전기 공학 석사 과정을 고려하다가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로 노선을 돌려 실리콘밸리로 이사하셨잖아요. 그 후에는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지만 지루해져서 클라우드 컴퓨팅의 선구자 중 하나인 그리드 다이나믹스를 창립하게 됐구요.


VL: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진행한 마지막 프로젝트가 선 그리드였어요. 아주 작은 팀과 함께 첫 번째 클라우드를 만든거죠. 저는 이것이 미래라고 확신했고 어떻게 발전할지 잘 알 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구요. 저희는 마이크로소프트, 이베이, 페이팔, 야후, 구글 등 다양한 기업을 위해 클라우드를 구축했죠.



JR: 정말 큰 회사들이네요…



VL: 정말 미친 듯한 여정이었어요. 결국은 상장하게 되었고 그때 전 테크 쪽 분야에서 은퇴했어요.



JR: 하지만 실제로는 은퇴하지 않으셨죠? 세계 곳곳을 하이킹하고 수-남극 파타고니아에서 북알래스카의 브룩스 산맥까지 다녀오셨잖아요.



VL: 저는 종종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재주가 있지만 다행히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재주도 가지고 있어요. 페루에서 하이킹을 하다가 매우 높은 고도에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지만 약 5,200m 고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산 폐부종이 생겼어요. 폐가 닫히기 시작해서 꽤 위험한 상황였는 데 운 좋게도 제때 하산했어요.



JR: 그런 경험이 다음 회사인 RightOnTrek을 시작하는 데 있어 주저하게 만들지 않았나요? 이 회사는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식사를 제공잖아요. 하지만 COVID 기간 동안 집에 갇혀 있었고 그때 포커를 발견하게 된거죠?



VL: 저는 TV를 보지 않아요. 그리고 나이가 많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매우 엄격한 격리를 받았어요. 18개월 동안 어디에도 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그래서 우연히 포커, 특히 토너먼트와 파이널 테이블 라이브 스트리밍을 접하게 되었어요. 하이 스테이크 캐시 게임도 같이 봤죠. 제가 찾을 수 있는 모든 포커 TV쇼를 본 것 같아요.



게임에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사람들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죠. 예전에 가끔 일이 끝나고 로우스테이크 게임을 플레이 한 적은 있지만 TV에 나오는 플레이어들은 전혀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고 저에게는 “블락커”나 “ICM” 같은 신비한 용어를 사용하더라구요. 아이러니하게도 18개월 동안 플레이는 하지 않고 스터디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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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그리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오자 즉시 곧바로 뛰어들었군요.



VL: 네, 라스베가스에 가서 $200 데일리 토너먼트에 참가했고 한 번은 우승을 차지 했어요. 그리고 WSOP 스케쥴을 보니 $25,000 바이인 브레이슬렛 이벤트가 시작된다고 적혀 있었죠. 해당 이벤트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등록한 건 당연히 아니였어요. 그런 포부는 없었어요. 단지 포커 세계에 끌리는 것 같았고 어쩌면 이 게임이 저에게 맞는 게임일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죠. 어찌보면 인생에서 늦게 얻은 선물일 수도 있고 제가 이것을 발견하고 플레이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게임은 분명 매우 복잡하고 스킬이 가득한 게임이에요. 모든 플레이어가 일반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잘해지지는 않죠. 하지만 체스와 수학 배경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토너먼트를 하이 스테이크 도박으로 생각한다면 저는 과거 훨씬 더 큰 도박과 복잡한 게임 트리가 있었던 30년간의 기업가 경험이 있었고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코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안내자가 필요했죠. 하지만 저는 아무도 몰랐어요. 포커와 관련된 아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죠. 하지만 이 $25,000 바이인 이벤트에 참가하면 저에게 코칭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어떤 무언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구요.


JR: 맞아요. 단순히 대화할 사람들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앤드류 ‘럭키 츄이’ 리흐텐버그와 닉 슐먼과 함께 또 다른 회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옥토피 포커를 말이죠.


 

VL: 하드 락에서 WPT 이벤트에 있었고 츄이가 $50,000 바이인 이벤트에서 승리했어요. 저는 그의 승리를 응원했고 축하를 하는 저녁 파티에 초대받았어요. 그때부터 우정이 싹트고 있었고 저희는 가끔 포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날 밤, 저희의 대화는 스터디 과정으로 넘어갔어요. 여러 툴, 솔버 등에 관련한 대화를 했죠. 포커를 새롭게 접해온 저로써는 이러한 툴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설명했어요. 사용하기 어렵고 직관적이지 않아 배우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그들에게는 훌륭한 툴이였고 이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게 광정히 자연스럽더라구요.



이는 우리가 더 나은 방법으로 포커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 계기가 되었어요. 같이 양파의 겉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죠. 새벽 5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에,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개발할 수 있는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말했어요. 여섯 명이 모여 포커 관련 최고의 기술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옥토피 포커는 이제 저의 12번째 스타트업이 되었어요.


 

츄이와 저는 계약을 맺었어요. 그는 제 포커 여정의 멘토이자 코치가 되어주고 저는 그의 비즈니스 여정에 있어 멘토이자 코치가 되기로 한거죠.



JR: 날카로운 사업가로서 현재와 미래의 포커 시장을 어떻게 보시나요?



VL: 저는 이 시장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사실이 기업가로서의 저를 끌어들이는 이유겠죠. 순전히 돈보다는 모든 무형의 요소들 때문에 말이에요. 저는 회사를 위해 회사를 설립하는 것만 하다가 은퇴했지만 이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물론 여기에는 순수한 재정적 이유가 아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요.



하지만 사업주, 투자자, 기업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놀라운 시장을 보고 있습니다. 게임 산업은 전반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포커도 그 거대한 물결의 일부분이에요. 



모든 시장, 모든 세그먼트, 정말이지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온라인 포커는 위태로운 상태에 있지만, 규제 관련해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어요. 반면 라이브 포커의 경우 기본적으로 관람 스포츠로 변해가고 있어요. 소비자 제품이 되고 있죠. 지역에 따라 성인 인구의 8~10%가 포커를 플레이 하고 있어요. 정말 엄청난 수치이죠. ♠

[이 게시물은 포커라이프님에 의해 2024-10-16 01:14:53 해외포커뉴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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