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플레이어43>Dan Smith ()

댄 스미스가 자신의 커리어 스타트, 7살부터 뱅크롤을 만든 이야기, 그리고 포커 올타임 머니리스트 5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예전에 제가 [포럼]에 올린 글들을 보면 토너먼트 플레이어들에 대해 험담하는 글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아이러니한 말은 지금까지 누적 상금 3,7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최고의 토너먼트 포커 커리어를 가진 사람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올해 31세인 댄 스미스(Dan Smith)는 그의 인생에 있어 절반이나 포커를 해왔습니다. 그는 어릴 적 전국 체스 토너먼트를 다니며 포커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뉴저지 주 매낼라판 출신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온라인에서 큰 돈을 벌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많은 프로 플레이어들이 부러워할 만한 뱅크롤을 모았습니다.
그의 라이브 토너먼트 커리어는 다소 더디게 시작되었지만 스미스는 점차 하이롤러 서킷에서 큰 스코어를 쌓으며 여러 번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22개의 토너먼트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7자리 수 상금을 기록한 대회는 무려 9번 입니다. 또한 2018년 '빅 원 포 원드롭(Big One For One Drop)'과 2019년 '트라이튼 슈퍼 하이롤러 런던(Triton Super High Roller London)'에서 각각 3위를 차지하며 100만 달러 바이인 대회에서도 입상한 바 있습니다. 그는 2013년 '파이브 다이아몬드 월드 포커 클래식(Five Diamond World Poker Classic)' 우승으로 월드 포커 투어(WPT) 타이틀도 획득했습니다.
스미스는 현재 브라이언 케니, 저스틴 보노모, 다니엘 네그리누, 에릭 사이델에 이어 역대 포커 상금 순위 5위를 기록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그의 관심은 포커보다는 자선 활동에 쏠려 있는데요, 스미스는 2014년 '더블 업 드라이브(The Double Up Drive)'라는 단체를 설립해 기부금에 대해 1:1 펀드를 제공하여 다양한 자선 단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포커 및 데일리 판타지 스포츠 커뮤니티의 다른 멤버들도 영입하며 1,6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희는 최근 '포커 스토리(Poker Stories)' 팟캐스트를 통해 스미스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첫 뱅크롤 조성 이야기, 체스에서 이룬 가장 큰 승리, 상금 순위 상승, 그리고 자신의 부고문을 작성하게 된 이유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입니다. 전체 에피소드는 Apple Podcasts, Stitcher, Spotify 또는 기타 팟캐스트 앱에서 청취할 수 있습니다.
카드 플레이어: 포커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댄 스미스: 제 첫 사랑은 체스였어요. 여섯 살이 되던 해 삼촌 폴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공룡 세트를 주셨는데 제가 잘못된 상자를 집어 들었죠. 그게 바로 체스였어요. 당시 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는데 둘 다 'ch'로 시작했고 체크 무늬 보드가 있어서 헷갈렸던 것 같아요. 첫 날부터 누나를 이겼고 3일째에는 아버지를 이겼어요. 그 후 10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대회에 출전했어요. 주니어 선수들 중에서는 꽤 실력이 좋았고 제 나이대에서 전국 순위 9위까지 올랐구요.
CP: 또래들보다 그렇게 잘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플레이를 많이 외웠던 건가요, 아니면 자연스러운 본능 같은 건가요?
DS: 외워서 되는 게 아니에요. 체스의 게임 트리는 너무 크니까요. 이게 미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에요. 체스에서 가능한 포지션의 수가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 게임 트리가 말도 안 되게 크죠.
CP: GTO(Game Theory Optimal) 포커와 비슷한 느낌인가요?
DS: 포커는 좀 더 관대해요. 잘못된 벳 사이즈를 사용해도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체스에서는 부정확하면 바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어요.
체스에서는 정밀함이 더 중요해요. 포커는 핸드를 폴드하고 정신적으로 잠시 쉬었다가 다음 핸드를 준비할 수 있지만 체스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하죠.
스터디 습관, 보드에서의 집중력, 침착함 유지 등 여러 요소가 중요해요. 나쁜 포지션에서 무너지거나 당황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변수들이 너무 많기도 했는 데 제가 그 중 일부를 잘했던 것 같아요.
CP: 체스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이었나요?
DS: 몇몇 그랜드마스터들을 이긴 적이 있어요. 흑돌로 (흑돌이 선수를 못 두니 불리하죠) 경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한때 세계 랭킹 4위였던 레오니드 유다신과 공식 대회에서 비겼어요.
하지만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그의 전성기에서 10~15년 지난 후였고, 그분이 저한테 운이 좋았다고 말하더라고요. (웃음)
CP: 체스 대회로 여행을 다니던 중 누군가 카드 덱 한 벌을 꺼내 들었나요?
DS: '머니메이커 효과'였죠. 그때는 다들 온라인 포커를 하고 있었어요. 밤 타임 때나 게임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카드 덱을 꺼내기 시작했죠. 주로 성인들과 플레이 했지만 아이들도 몇 명 있었어요. 체스와 비교하면 포커는 너무 쉬운 게임처럼 보였어요.
체스에서는 최고 수준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이 항상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하죠. 그런데 TV에서 포커를 보면 명백히 최선을 다하지 않고 웃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잖아요. 이건 제가 무조건 해야 될 게임이라고 느꼈어요.
15살에 큰 체스 대회를 뛰면서 전국 15위권에 있는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걸 봤어요. 그런데 포커를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구요. 저는 '왜 나도 못하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체스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 제 실력이 정체되어 있었어요. 레이팅 2,200점이 되면 마스터로 인정되는데 당시 2,150점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걸 넘는 건 꽤 큰 장벽이었고 거기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포커]로 전향했을 때는 매번 플레이할 때마다 새로운 걸 배우면서도 여전히 이길 수 있었구요. 포커라는 게임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10대 때 엄청난 돈을 벌었던 것도 나쁘지 않았죠. 고등학교 3학년 여름에는 $3-$6 노리밋(No-Limit)을 플레이하며 두 달 연속 $30,000을 벌었어요.
CP: 도박은 본능적으로 잘하셨나요?
DS: 도박은 항상 제 피 속에 있는 뭔가 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경마를 정말 좋아하셨는 데 저는 토요일 오후를 주로 경마장에서 보냈어요. 7살 때 $96을 딴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아버지가 하루에 한 번씩 베팅하게 해주셨는데 그 날 $2로 정확하게 1, 2등을 맞히는 ‘익사타(exacta)’ 베팅을 했고 이겼어요. 그래서 그 후 몇 주 동안 제 $96을 가지고 경마장에 가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베팅을 했죠. 그때는 돈을 그냥 찍어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CP: 메릴랜드 대학교에 잠깐 다니셨지만 결국 포커를 선택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서 진행하는 대회로 보냈잖아요. 하트랜드 포커 투어 메인 이벤트에서 우승으로 출발이 좋았지만, 그 후에는...
DS: 2009년의 경우 유럽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한 해 내내 이기질 못했어요. 라이브 토너먼트는 전부 뛰기로 결정했지만 그 몇 년 동안 라이브 대회에서 전혀 성공하지 못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실력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고 운도 상당히 나빴죠. 하지만 라이브 토너먼트는 베리언스가 정말 심하고 샘플 사이즈가 충분히 크지 않다는 게 문제예요.
CP: 포커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DS: 그 당시 제 모든 걸 포커에 걸었어요. 제 능력을 믿는 깊은 믿음이 있었고 제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 믿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체스 경험 덕분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솔직히 다른 대안이 없어서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학위도 없고 다른 기술도 없었거든요. 포커 말고 제가 할 수 있었던 게 뭐가 있을지 정말 모르겠어요.
CP: 결국 상황이 나아졌고, 이후에는 하이롤러 대회에 나서게 되셨죠. 토너먼트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고 느낀 건 언제였나요?
DS: 제가 $100,000 바이인의 'Aussie Millions High Roller'에서 우승했을 때예요. 106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죠. 이로 인해 하이스테이크 플레이어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계속 활동할 거라는 첫 번째 신호였던 것 같아요. 며칠 후에는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던 $250,000 바이인 대회에도 나갔어요. 특히 2012년 였기에 이 같은 바이인 이벤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했죠.
그리고 모나코에서 열린 EPT 그랜드 파이널에서 €5,000 바이인 이벤트를 연속으로 세 번 우승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특별했던 순간이에요. 그 이후로 슈퍼 하이롤러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는데 저는 항상 그러한 대회들에 참가했던 몇 안 되는 플레이어 중 한 명 였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았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도 안 될 거예요. 그 기간 동안 저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고, 10년 넘게 걸쳐 이룬 제 업적이 자랑스럽기도 하구요.
CP: 상위권에 오른 기록을 보면 3위나 준우승이 많아요. 우승을 놓친 상금에 대해 아쉬워하시나요, 아니면 이런 근접한 성과도 잘 받아들이시는 편인가요?
DS: 대회가 끝난 바로 직후에는 약간 아픔이 남을 때가 있어요. 작년 여름만 해도 트라이튼 슈퍼 하이롤러 런던에서 커리어 최고 상금을 기록했는데 3위를 했고 £720만(약 90억 원)을 받았죠. 경기 직후 한 시간 정도는 정말 화가 나고 속상했어요. 4명이 남았을 때 칩 리더였고 우승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제 뜻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하지 않아요]. 제 커리어 전체를 봐도 저는 큰 행운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이제는 또 다른 대회에서 우승한다고 해서 제 삶이 크게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돈이 많이 있을 땐 더 크게 도박하고 돈을 잃거나 자금이 부족할 땐 더 작게 도박해요. 돈이 제 결정을 바꾸진 않아요.
그리고 더 많은 명성을 얻고 싶다는 마음도 별로 없어요. 그건 제 관심사가 아니니까요.
CP: 올타임 머니 리스트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인가요?
DS: 뭐가 됐든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에요. 바이인을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통계는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해요. 몇 백만 달러짜리 바이인 대회 몇 번 만 입상해도 결과가 크게 왜곡되기 때문에 이런 순위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봐요. 물론 5위보다는 1위가 더 좋겠죠. 그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제게 특별히 중요한 건 아니에요.
CP: 당신은 분명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지만, 일반적인 포커 팬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이 덜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업적을 감안하면 과소평가되거나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끼신 적이 있나요?
DS: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에는 동료들의 존중이 정말 중요했어요. 하지만 제 이십 대 초반에는 멘탈 건강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고, 자존감도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그래서 포커에서의 업적을 쌓고 부자가 되고, GPI(Gobal Poker Index) 1위를 달성하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결국 그 모든 걸 이루었지만, 제 삶은 여전히 똑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길거리에서 누군가 제 포커 실력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생각할 자유가 있고, 그게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제 치료사가 저를 대상으로 한 연습을 시켰는데, 제 자신의 장례식에서 낭독할 추도사를 작성해 보라는 거였어요. 그러면 제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했죠. 물론 제가 추도사를 전문으로 하는 작성가는 아니지만 결국 작성한 추도사에는 포커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어요.
CP: 포커 외적으로도, 당신이 운영하는 자선 단체에서 이루신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DS: 저는 ‘더블 업 드라이브(Double Up Drive)’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단체의 아이디어는 기부금를 하고 어떠한 도전을 통해 늘리는 거에요. 누군가 $100를 기부하면 제가 그 금액을 맞출 누군가를 찾아내서 효과를 두 배로 만드는 방식이에요. 지난 6년 동안 1,6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어요.
가끔씩 제 자신에게서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야 할 때가 있어요. 어느 해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선 단체인 ‘스트롱 마인즈(Strong Minds)’에서 저희 연례 모금 덕분에 우간다의 5,000명의 여성이 12주 동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스트롱 마인즈는 저희가 선정한 10개 자선 단체 중 하나일 뿐이었죠. 세상에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고 멋진 일이라고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