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레이머, 자신의 WSOP 메인 이벤트 우승 20주년을 회고하다 ()
2003년, 크리스 머니메이커(Chris Moneymaker)가 839명의 참가자를 제치고 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WSOP) 메인 이벤트에서 우승하며 250만 달러를 거머쥐면서 포커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의 우승은 "머니메이커 효과(Moneymaker Effect)"를 일으켜 “포커 붐”을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다음 해의 WSOP 메인 이벤트 참가자 수는 무려 3배로 증가했습니다.
2004년 메인 이벤트는 WSOP의 발상지인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비니언스 홀슈(Binion's Horseshoe)에서 열렸으며 해당 장소에서 열린 마지막 메인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그 해 메인 이벤트에는 2,576명의 참가자가 몰려들었고 ESPN 카메라가 모든 플레이를 포착하면서 여러 포커 플레이어들이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데이비드 윌리엄스(David Williams)와 더불어 조쉬 아리에(Josh Arieh)와 같은 젊은 플레이어들뿐 아니라 1995년 WSOP 메인 이벤트 우승자인 댄 해링턴(Dan Harrington)도 포함되었습니다. 해링턴은 2003년 WSOP 메인 이벤트에서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4년 대회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150만 달러를 획득해 엄청난 역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벤트가 끝나고 우리는 코네티컷 출신의 특허 변호사 그렉 레이머(Greg Raymer)가 500만 달러의 상금과 더불어 브레이슬렛을 차지하며 우승을 한 건 볼 수 있었습니다. 2005년, 레이머는 참가자 수가 전년도보다 두 배 늘어난 5,619명이 참가한 2005 WSOP 메인 이벤트에서 타이틀 방어에 나섰는데요, 해당 이벤트에서도 25등을 하며 $304,680를 획득하며 그의 우승이 단순한 운이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레이머가 WSOP 메인 이벤트를 우승 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포커를 계속 즐기고 있습니다. 그의 우승 20주년을 기념하여 PokerNews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고 2024년 WSOP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렉 레이머와의 Q&A
2024 WSOP에 참가한 그렉 레이머
Q: 2004년 WSOP 우승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요?
A: 기억이라는 건 참 신기한 거죠. 우리 모두 생각보다 훨씬 나쁜 기억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과학 연구를 통해 이 사실은 명백히 입증된 부분이죠. 제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부분은 주로 TV로 방영된 장면들이에요. 그 장면들을 여러 번 다시 봤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 외에도 기억나는 핸드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건 마지막 핸드에요. 플랍에서 첵-레이즈를 했고 턴에서 베팅한 후 리버에서 올인(All-in)을 했죠. TV로 보면 제가 “올인”이라고 말한 뒤 카메라가 데이비드에게 클로즈업 됐고 그가 몇 초간 생각한 뒤 “콜(Call)”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편집되었지만 실제로는 제가 "올인"이라고 말했을 때 마주 보고 있던 사람은 맷 새비지 였어요.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를 보기 전 그는 이미 "콜"을 외치며 자신의 핸드를 오픈한 상태였죠. 그 순간, 너무 빨리 콜을 했길래 제 핸드가 지는 줄 알았습니다. 보드는 5♠4♦2♦2♥2♣ 였고 제 핸드는 8♦8♠이었어요. 잠시 후 제 핸드가 승리한 것을 깨닫고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어올리며 승리의 포효를 질렀어요.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Q: 우승 후 몇 년간과 포커 붐이 일어났을 때의 삶은 어땠나요? 유명한 플레이어가 됐다고 봐도 될까요? 지금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나요?
A: 보통 식료품점이나 공공장소에 가면 몇 번씩 알아보는 일이 있곤 했죠. 하지만 이제는 많이 잠잠해졌어요.
우승 직후 몇 달 동안 제 “유명세”는 포커 룸에 국한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ESPN을 통해 이벤트가 방영되기 시작한 후부터는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어요. 당시 딸이 일곱 살 였는데 매년 디즈니월드에 갔었거든요, 2004년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즐겼지만 그 이후로는 하루에 100번이 넘게 팬들과 마주치는 경험을 했죠. 식료품점 같은 곳에서도 몇 번씩 알아보는 일이 생겼구요.
하지만 지금은 잠잠해요. 포커룸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지만 카지노와 포커 룸 밖에서는 팬들과의 만남이 훨씬 줄어들었어요.
2004년 그 사이 기간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당시 저는 포커스타즈를 대표하는 프로가 됐고 여름에 열린 PL 홀덤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크리스 머니메이커 및 다른 프로 몇 명과 함께 더블린에 갔어요. 제 아내와 딸도 동행했구요.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탔는데 몇몇 사람들이 이미 좌석에 앉아 있었던거에요. 한 남자가 술에 취한 상태로 포커 스타즈 셔츠를 보고는 “포커! 크리스 머니메이커 알아요?”라고 묻더군요.
제가 “네, 오늘 아침에 그와 아침 식사를 했어요.”라고 답했죠. 사실이기도 했고요.
그러자 그 남자가 옆에 있던 친구를 팔꿈치로 치며 “그럴 리가! 그럼 내 아내는 오늘 저녁에 그와 저녁 먹겠네!”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웃으며 지나쳤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사람이 몇 주 후 TV에서 나를 보면서 그때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라고 생각했죠.
Q: WSOP 우승이 당신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저는 특허 변호사로 12년간 일했어요. 그 중 마지막 6년은 코네티컷 남동부에 있는 화이자에서 일했구요. 전형적인 9시-5시 직장이었고 가족과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었어요. 매일 밤 집에 돌아가 아내와 딸과 시간을 보냈고 주 2~3회 정도를 근처 폭스우즈(Foxwoods) 포커 룸에서 포커를 즐겼어요. 그리고 매년 한 번씩 WSOP 같은 대회를 위해 여행을 떠났죠.
우승 후 PokerStars 프로가 되었고 이는 1년에 약 절반의 시간을 전 세계 라이브 토너먼트에 참석하며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저는 포커를 사랑했고그런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로 인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죠.
가족들은 가끔 저와 동행했는데 주로 여름 시즌에 파리나 런던 같은 재미있는 곳들이나 혹은 1월의 PCA, 그리고 WSOP가 열리는 라스베가스에서 저와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이 삶을 선택한 것은 제 결정이었고 가장 후회되는 부분은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었어요. 강요받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저에게 있겠죠.
Greg Raymer
Q: WSOP 메인 이벤트 우승으로 얻은 최고의 성과는 무엇인가요?
A: 많은 멋진 곳을 갔고 훌륭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놀라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서울, 멜버른, 시드니, 뉴질랜드, 그리고 남미와 중앙아메리카 여러 지역은 물론이고 유럽 곳곳을 방문하며 포커를 즐길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등 여러 놀라운 장소를 탐방할 기회도 있었구요.
제가 사랑하는 포커를 훨씬 많이 할 수 있었고 이는 제가 진정으로 열정을 가진 포커 코치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교육자로서의 직업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평생 재정적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꼭 포커가 아니더라도 제가 유용하게 아는 주제라면 무엇이든요. 지금도 포커룸을 예약해 제 포실맨 포커 트레이닝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가능한 한 자주 진행하려 노력하고 있고 매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2024년 WSOP에서 그렉 레이머가 표지 모델로 나온 PokerNews 프로그램
Q: 반대로 WSOP 메인 이벤트 우승으로 인해 생긴 최악의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A: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과의 시간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리고 벨라지오에서 저를 노렸던 강도들도 최악이었죠. 하지만 당시엔 끔찍했을지 몰라도 되돌아보면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어요. 어쨌든 다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으며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제 자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생각하기엔 과분할 정도의 터프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죠. 그런데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가라테 찹” 관련 이야기는 완전히 거짓이에요. 누가 그 말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Q: WSOP 메인 이벤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나요?
A: 장담하건데 계속 특허 변호사로 계속 일하고 있었을 거에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사랑했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즐기면서 일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훌륭한 직업"이라고 항상 말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도 가끔 특허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변호사는 아니지만 여전히 특허 대리인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명가를 미국 특허청(USPTO)에서 대리할 수 있구요..
메인 이벤트에서 큰 상금을 받았지만 온라인 사이트와의 스폰서 계약을 제안받을 만큼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 못했다면 제 직업을 그만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포커를 전업으로 하진 않았을 거예요. 대신 특허 변호사로 개인 사무실을 차리고 스케줄을 유연하게 조정해 WSOP나 다른 포커 시리즈를 통해 좀 더 자주 여행했겠죠.
지금도 사람들에게 학교를 중퇴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포커를 전업으로 삼으라고 절대 권하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했던 유일한 이유는 포커스타즈가 화이자에서 특허 일을 하며 받던 급여보다 더 많은 돈을 제안했기 때문이었어요.
포커를 전업으로 삼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길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구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포커는 항상 당신의 삶의 일부가 될까요? 아니면 은퇴를 고려하고 계신가요?
A: 제 미래에는 항상 포커가 있을 겁니다. 제가 플레이할 수 있고 기대값(+EV)이 있는 한 계속할 거예요. 언젠가 더 작은 게임으로 내려가야 한다면 그때 가서 이를 받아들이면 돼구요. 저는 이 게임을 정말 사랑하고 장기간 포커를 하지 않는 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요. 몇 번의 대회에서 연속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게임을 하고 싶어지겠죠.
출처 : PokerNews